매크로경제70 차마고도 실크로드보다 앞선 동서양 문명을 잇는 2천년 교역로 실크로드와 함께 중국의 3대 무역로로 꼽히는 차마고도(茶馬古道)의 역사적 의미와 가치를 살펴본다. 한나라 시대부터 청나라 말기까지 약 2천년간 이어진 이 길은 중국과 티베트를 잇는 경제·문화 교류의 대동맥 역할을 했다. 실크로드가 중국과 유럽을 연결하며 동서양 문명의 교류를 이끌었다면, 차마고도는 중국 서남부와 티베트 고원을 연결하며 고산지대 특유의 독특한 문명을 발전시켰다. 특히 차와 말의 교역을 중심으로 한 경제 활동은 이 지역만의 독특한 문화권을 형성하는 토대가 됐다.차마고도 뜻과 이름 유래차마고도(茶馬古道)라는 이름은 이 길의 성격을 명확히 보여준다. '차(茶)'는 중국의 차를, '마(馬)'는 티베트의 말을, '고(古)'는 오래된, '도(道)'는 길을 의미한다. 직역하면 "차와 말이 오가던 오래된.. 매크로경제 2024. 12. 14. 더보기 ›› 중세시대 최대의 금융위기 1347년 바르디-페루치 은행 도산 1347년 플로렌스의 바르디와 페루치 은행의 도산은 중세 유럽 최대의 금융위기였다. 영국 왕실의 채무불이행이 직접적 원인이었으나, 당시 유럽 금융시스템의 구조적 취약성을 드러낸 사건이었다. 두 은행의 파산은 국제금융의 중심지였던 플로렌스 경제에 치명타를 입혔다. 위기의 전개 과정1340년대 초, 영국 에드워드 3세는 프랑스와의 백년전쟁 전비 조달을 위해 플로렌스 은행들로부터 150만 플로린이라는 거액을 차입했다. 이는 당시 플로렌스 연간 세수의 3배에 달하는 금액이었다.전쟁이 장기화되자 에드워드 3세는 1345년 채무상환을 중단했고, 이는 바르디와 페루치 은행의 연쇄 도산으로 이어졌다.두 은행은 당시 유럽 최대 규모의 금융기관이었다.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지중해 연안에 지점망을 갖추고 있었고, 교황.. 매크로경제 2024. 11. 29. 더보기 ›› 14세기 유럽 금융위기 화폐 변조 사태 14세기 유럽에서 발생한 대규모 화폐 변조 사태는 중세 통화체제의 붕괴를 초래했다. 봉건영주들의 무분별한 화폐 가치 조작으로 시작된 이 위기는 유럽 전역의 경제 혼란을 야기했고, 근대 화폐제도 발전의 전환점이 됐다. 화폐 변조의 메커니즘화폐 변조는 주로 두 가지 방식으로 이뤄졌다.첫째는 주조된 동전의 귀금속 함량을 감소시키는 것이었다. 은화에 구리를 더 많이 섞거나, 금화의 순도를 낮추는 방식이었다.둘째는 동일한 금속 함량에 더 높은 액면가를 부여하는 것이었다. 예를 들어 1실링 주화를 2실링으로 재주조하는 식이다.특히 프랑스의 필립 4세는 1295년부터 1303년 사이 화폐의 은 함량을 66%나 감소시켰다. 영주들은 이런 변조로 단기적 이익을 얻었지만, 장기적으로는 화폐 시스템 전체의 신뢰도가 무너졌다.. 매크로경제 2024. 11. 28. 더보기 ›› 실크로드 내용과 역사적 경제적 의미 실크로드는 기원전 2세기부터 14세기까지 동아시아와 지중해를 연결한 교역로다. 단순한 무역로를 넘어 문명 교류의 통로 역할을 했으며, 인류 역사상 최초의 글로벌 네트워크로 평가받는다. 한(漢)의 장건 출사로 본격 개척된 실크로드는 이후 1,500년 이상 유라시아 문명의 대동맥으로 기능했다. 실크로드의 주요 경로3대 주요 루트1. 북방루트• 장안 → 둔황 → 투루판 → 카슈가르 → 사마르칸트 → 페르시아• 특징: 오아시스 도시 연결, 정치적 안정성 높음2. 남방루트• 장안 → 둔황 → 쿠차 → 호탄 → 카슈미르 → 인도• 특징: 불교문화 전파 경로, 고산지대 통과3. 해상루트• 광저우 → 말라카 → 스리랑카 → 페르시아만• 특징: 계절풍 이용, 향신료 무역 중심주요 교역품 동서 교역품 비교방향주요 상품특징.. 매크로경제 2024. 11. 27. 더보기 ›› 1797년 영국의 금본위제 정지 첫 불태환 사건 1797년 영국은 나폴레옹 전쟁의 전시 금융 위기 속에서 파운드화의 금 태환을 정지했다. '금 지급제한령'으로 알려진 이 조치는 1821년까지 지속됐으며, 최초의 본격적인 불태환 지폐 시대를 열었다. 이는 현대 통화정책의 시발점으로 평가받는다. 금태환 정지의 배경프랑스와의 전쟁이 장기화되면서 영국의 금 보유고는 급격히 감소했다. 정부는 대륙봉쇄령에 대응하기 위해 막대한 전비를 지출했고, 유럽 동맹국들에 대한 보조금 지급도 금 유출을 가속화했다.1796년 말, 프랑스군의 아일랜드 침공 소문이 퍼지자 대중들은 은행으로 몰려가 금화로의 태환을 요구했다. 지방은행들이 연쇄적으로 도산하기 시작했고, 영란은행의 금 보유고도 위험 수준으로 떨어졌다.결정적 계기는 1797년 2월 프랑스 함대가 웨일스 피시가드에 상륙했.. 매크로경제 2024. 11. 26. 더보기 ›› 이전 1 2 3 4 5 6 ··· 14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