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Z세대에게 회사 생활에서 충성을 강요할 수 없는 이유

소위 '낀세대'의 입장에서 바라본 시각이다. 나름 직장 생활을 꽤 오래 해보면서 요즘 들어오는 MZ세대에게 회사에 대한 충성을 강요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여기에는 세대간의 생각 차이가 아니라 애초에 보다 근본적인 구조적 문제가 있다.

 

지난 글에서 90년생 MZ세대와 일하다 황당했던 일에 대해서 반박하는 의견을 작성한 적이 있다. 요즘 젊은 신입사원들이 가지는 인식이 사실은 가야할 방향이라는 것이다.

 

이번 글에서는 그러한 나이로 구분한 세대에 따라오는 생각의 차이가 아니라, 보다 근본적인 한국 기업의 문제점에 대해 말해보고자 한다.

 

    1. 세대의 분류

    요즘 회사 조직을 구성하고 있는 사람들의 연령은 대체로 다음과 같이 나눠볼 수 있다. 비교적 규모가 큰 대기업이나 중견기업 이상을 예시로 해서 설명해보겠다. 한차례 큰 경제 위기별로 분류한다.

     

    • 구세대 : IMF와 닷컴버블 이후 입사해서 2000년대에 주로 회사생활을 한 세대
    • 낀세대 : 2008년 금융위기 전후로 입사해서 2010년대에 주로 회사생활을 한 사람들
    • MZ세대 : 2020년 코로나 팬데믹 전후로 해서 지금 회사의 가장 밑을 떠받치고 있는 사원들

     

    구세대는 현재 한국 산업의 큰 축을 담당하고 있는 주요 회사들의 고도 성장기에 입사했다. 위에 사람이 별로 없었고 직급이 낮을 때부터, 연차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부터 중책을 맡고 아랫사람을 데리고 일을 해왔다. 회사는 매년 성장이 눈에 보였고 일은 넘쳐났고 회사에 살다시피 야근을 하고 주말에도 출근했다.

     

    낀세대는 그런 구세대의 밑으로 들어와서 라떼는 말이야 소리를 들어며 허드렛일부터 도맡아 했다. 그런데 슬슬 산업 성장속도는 더뎌지고 회사의 미래는 그다지 밝지 않다. 매년 위기네 어쩌네 소리를 밥먹듯이 하고 아랫사람도 별로 들어오지 않는다.

     

    처음 들어왔을 때 구세대가 지시하고 낀세대가 수족처럼 일했는데, 5년 10년이 지나도 어째 이 업무방식이 똑같다. 선배들과 같이 나이를 먹어가고 직급과 연차는 높아지는데, 하는 일 또한 선배들도 그대로 나도 그대로인 느낌이다.

     

    MZ세대는 이렇게 성장이 둔화되고 회사가 큰 비전이 없는 와중에 들어온 신입사원이다. 내가 여기에 뼈를 묻고 앞으로 30년 이 회사의 찬란한 미래와 함께하리라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30년 전 회사중에 지금 남아있는 회사가 몇이나 되는지 잘 알고 있다.

     

    월급이 얼만지, 일하기는 편한지, 일하면서 배우는 점이 있어서 커리어를 쌓고 더 좋은 곳으로 나중에 갈 수 있을지, 회사 내 문화는 어떤지, 어떤 부서가 좋은지, 근무지는 어디이고 지방 발령을 시키면 가야되는 분위기인지 등등 사전에 다 알고 들어온다. 회사 안에서 일하는 사람들보다 더 빠삭하게 정보를 잘 알고오는 경우도 많다.

     

    2. 조직의 노화

    한국의 회사들은 늙었다. 그게 가장 큰 문제이고 새로 들어오는 신입사원에게 충성을 강요할 수 없는 근본적인 이유이다.

     

    앞서 말한 구세대가 처음 회사생활을 시작할 때에는 부장 1명, 차장 1명, 과장 2명, 대리 2명, 사원 3명 이런 구조였다. 위에 선배들 다니다가 좀 나가고 나름 열심히 하면 자기가 한자리 꿰차고 중간 관리자인 '매니저'의 업무로 회사생활을 할 수 있었다.

     

    그런데 낀세대가 들어왔을 때는 부장 2명, 차장 3명, 과장 5명, 대리 5명, 사원 2명 이런 구조다. 위에가 줄줄이 참 많은데 이게 몇 년 지나면 죄다 부장 차장이 되어있다. 일할 사람은 손에 꼽히는 대리 2명과 갓 들어온 신입사원 후배 하난데 검토만 하고 입만 나불거려서 지시만 하는 윗사람은 5명이다.

     

    일할 사람이 없는 문제에 더해서 사공이 많으니 배가 산으로 가고 여러명이 원하는 것만 많아서 업무 진행이 수시로 바뀌면서 개판이 된다. 여기에 오래 있어보면 사람이 매너리즘에 빠지면서 나중에 자포자기하게 된다. 어차피 개판이 될건데 대충 시키는 것만 때우고 최대한 안된다 못한다고 하게되는 것이다.

     

    낀세대가 이렇게 지칠 때쯤 MZ세대가 들어온다. 이들은 처음부터 회사에 안주할 생각이 없다. 낀세대가 MZ세대에게 '태도'를 강요하면 본인도 구세대와 같은 꼰대가 된다. 직급과 연차가 승진을 생각해야 되는 입장이라 (대부분 가정도 있고) 회사에 (정확히는 구세대 윗사람에게) 어느정도 충성하는 척이라도 해야한다.

     

    점점 조직이 늙어가서 윗사람만 바글바글 해지는데, 회사 사정이 어려우니 뽑아서 키워야 하는 신입사원은 점점 채용을 안한다. 바로 써먹을 수 있는 경력직을 뽑는 비중이 높아지고 이는 역피라미드 구조를 점점 가속화시킨다.

     

    MZ세대 회사생활 썸네일 이미지

    3. 충성은 너나 하세요

    이런 와중에 신입이면 신입답게 더 늦게까지 남아서 공부도 하고, 뭘 더 기여해서 1인분 얼릉 할 수 있을지 노력하라고 말할수가 있을까?

     

    회사에 충성하라는 말은 그만한 보상이 주어질 기대치가 있을때 가능한 소리다. 앞으로는 경제도, 산업도, 회사도, 작게는 우리 부서도 미래가 암울하다. 그 와중에 열심히 해서 여기서 승진하고 나중에 높은 자리까지 꿈꿔봐 라고 하는게 얼마나 씨알도 안먹히고 와닿지도 않는 소리인지.

     

    회사에 늦게까지 남아서 남보다 더 많이하고 시키지 않아도 알아서 일을 찾아서 맥시멈으로 하는건, 그만큼 그에 대해 돌아오는 게 있는 사람이 하는 것이다. 회사에 근로자로써 월급을 받는 만큼 해야하는 업무적인 의무와 책임은 있다. 하지만 일하면서 회사에 기대하는 부분도 있기 마련인데 크게 두 가지다.

     

    • 직접적인 보상
    • 자신의 성장

     

    일을 열심히 해서 성과를 냈으면 승진이든 보너스든 공정하고 합당한 보상이 주어져야 남보다 열심히 해서 더 잘하려고 하는 것이다. 공평한 평가 제도가 뿌리내리지 못하고 정치질이 승진에 영향을 주는 곳에서는 그런 근로의욕을 다 사라지게 만든다.

     

    또 중요한 것은 커리어이다. 내가 회사에서 일하며 쌓은 시간동안 나 자신이 성장하고 가치가 올라가야 의미가 있는 것이지 안그러면 단순작업 알바를 하는 것과 다를바가 없지 않은가. 이 회사에서 이 분야에서 5년을 일한 경력자입니다 하고 내세울 기술과 경험이 쌓이는 일을 해야 보람도 느끼고 열심히 하게 된다.

     

    대부분의 동력이 식어빠진 한국 회사들에서는 저러한 것들을 기대하기가 어렵다. 그 근본적인 원인은 앞서 말했듯이 산업 전망도, 인력 구조도 늙었다는 것이고.

     

    그래서 이런 환경에서 새로 들어온 MZ세대에게 회사에 애사심을 가지고 해야 네 발전에도 도움이 된다고 선뜻 말할수가 없는 것이다. 정말 발전에 도움이 되는 것은 이 회사에 적당히 다니면서 자기계발을 더 해서 훨씬 좋은 곳으로 옮기는 기회를 잡는다면 그게 그 사람한테는 좋은 일이니깐.

     

    MZ세대가 개념이 없어서 워라밸을 중시하고 회사에 대한 충성에 고개를 갸웃하는 것이 아니다. 요즘의 상황이 그럴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사정이 이러한데, 신입사원에게도 이거 할 것만 하고 빨리 퇴근해 라고 말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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