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관리 GTD vs 프랭클린 플래너

회사생활을 의욕에 차서 처음 시작할 때는 두터운 프랭클린 플래너를 들고 하루의 시간을 철저히 관리해서 효율적으로 보내겠다는 부푼 꿈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정작 2,3주만 지내보면 그게 아님을 깨닫게 된다.

 

업무의 대부분은 잡일과 심부름이 차지하고 있으며 또한 모든 일은 하나를 마치고 다른 것을 하는 게 아니다.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하는 여러 가지의 진행상황을 모두 체크하여 사소한 것이든 중요한 것이든 펑크를 내면 안 된다.

 

여기 전화를 걸었다가 안 받으면 좀 있다 다시 해야지 하고 메모를 해두고 그 와중에 옆자리 선배에게 온 전화를 받아서 부재중 표시를 해두는데 부장님이 뭘 해오라고 심부름을 시켜서 갔다 오다가 조금 전에 직속선임에게 지시받았던 자료정리가 떠올라서 다시 부랴부랴 하던 중에 다른 선배가 일손이 필요하니 같이 좀 가자고 부탁을 하고... 이렇게 정신없이 치이다 보면 이미 프랭클린 플래너 A2? B3? 이딴 거 체크하고 있을 시간 없다.

 

이러한 상황에 어울리는 시간관리 방법으로는 GTD라는 막무가내식 처리법을 추천하고 싶다. 다만 여기서는 그 정석적인 방법론을 구구절절 설명하지는 않을 것이다.

 

GTD : Getting Things Done

 

핵심은, 시간관리를 하기 위해 시간을 많이 투자하는 것은 그 자체로 또 다른 낭비다. 시간관리라는 것은 습관에 녹아서 숨 쉬듯이 행해져야 한다. 면요리를 먹는데 젓가락과 포크 중에서 효율성을 고려해서 선택하는 그런 차원의 문제이지, 다 먹고 디저트를 먹을지 고민하는 사치가 되어서는 안 된다.

 

GTD, 즉 Getting Things Done 방식은 이름에서부터 알 수 있듯이 일을 해치우는데 목적이 있다. 프랭클린 플래너의 취지는 일의 중요도와 우선순위를 통해 장기적 자기 계발을 추구하는 것이고, GTD는 정신없는 상황 속에서 효율적으로 빨리 일을 끝내기 위해 사용한다.

 

정식 순서는 수집(Collect) - 처리(Process) - 정리(Orgarnize) - 검토(Review) - 실행(Do)의 5단계로 이루어지는데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할 일들을 몽땅 나열하고 당장 할 수 있는 건 처리해 버린 후 나머지는 일정에 맞게 정리해 놓고 주기적인 검토를 하면서 실행하는 것이다.

 

실제로 내가 하는 방식은 이렇게 거창하지 않다. 오히려 방식이라고 하기에도 뭐 하고 굳이 갖다 붙이니까 GTD라는 관리법에 속하는 거지 사실상 할 일 메모해 놓고 닥치는 대로 하는 것이 지나지 않는다.

 

그런데 이게 프랭클린 플래너보다 효율적이다. 내가 하고 있는 방법은, 할 일이 발생하면 일단 수첩에 적는다. 무조건 적는다. 이때 앞에 네모칸 하나를 만들어서

 

ㅁ 1분기 제품별 위험요소 파악자료 취합 (~15시, to 누구)

ㅁ 전산 처리요청 대응해 주기

ㅁ 구매팀에 견적서 및 승인 납기일정 문의하기

 

뭐 이런 식으로 무턱대고 적는다. 가급적이면 앞에 ㅁ 칸을 맞춰서 세로로 적어야 한다. 그래야 ㅁ 표시만 보고서 빨리빨리 생각해서 할 일을 판단할 수 있다. 중요한 일도 적고 사소한 일도 적고 개인적인 일도 적고 다 적는다. 그리고, 급한 것부터 빨리 처리한다.

 

프랭클린 플래너는 중요한 일을 하기 위해 분류를 하는 것이지만, GTD는 선입선출로 납기가 우선인 일을 빨리 처리하기 위해 쓴다.

 

회사에서 업무를 하다 보면 사소한 거, 중요하지 않다고 판단되는 것들을 안 할 수 있는가? 내 자기 계발과는 상관없는 부장님 심부름, 쌩깔 건가? 못한다. 귀찮은 타 부서의 요청사항, 무시할 건가? 나도 아쉬운 소리 할 날이 있으니 해줘야 된다. 그래서 프랭클린 플래너가 무용지물이 되어버린다.

 

프랭클린 플래너로는 A, B, C, D로 각각 급하고 중요한, 안 급하고 중요한, 급하고 안 중요한, 안급하고 안중요한 일로 분류를 한다. 그리고 A, B, C, D에 번호를 부여해서 우선순위도 정한다. 그래서 당장 닥치는 일만 했을 때 신경을 못쓰게 되는 B에 시간을 많이 투자하도록 하는 것이 프랭클린 플래너의 취지이며 궁극 목표다.

 

그렇지만 반복해서 계속 말하는 것처럼 회사 업무에서 중요도보단 납기일정이 훨씬 Dominant 고려사항이 되기 마련이기에, 그런 분류를 하고 있을 시간에 그냥 할 일을 까먹지 않도록 꼼꼼히 적은 후 쉽고 금방 처리할 수 있는 일들을 순식간에 해치운 후 중요하고 오래걸리는 일을 느긋하게 하는 방식으로 하는 것이 효율적이다.

 

GTD의 정식 프로세스 대로 꼼꼼히 매 단계를 수행하면 그 또한 시간낭비가 되므로, 할일을 나열하고 한두 가지를 해치우면 다시 목록을 쓱 본다. 그리고 그동안 오늘 할 필요가 없어진 일들이 있을 것이다.

 

이것들은 표시를 지워버리고 해당 날짜에 적어놓는다. 그리고 그 전날 마음의 준비를 하고 당일에 출근해서 수행을 하면 된다. 이렇게 Organize와 Review는 한 가지 일을 마치고 다음 할 일을 고르는 순간마다 습관적으로 행해준다.

 

그리고 하루가 마무리될 즈음에는 남은 목록 중에서 꼭 오늘 마무리해야 되는 업무부터 진행을 하고 굳이 급하지 않은 것은 내일 지면에 옮겨놓는다. 이 또한 습관적인 Organize와 Review절차가 된다. 이런 식으로 하면 물론 프랭클린 플래너에서 추구하는 자기 계발 관점에서는 꽝이다.

 

하지만 애초에 회사 업무시간에 자기 계발을 생각하고 있는다는 것 자체가 모순이고, 일단 업무를 효율적으로 빨리 끝내는 것이 여가시간 확보가 되어 결과적으로는 자기계발에도 도움이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GTD로 후딱 끝내고 칼퇴한 후에 자기계발을 계획해서 하면 된다.

 

즉 회사일과 개인시간을 분리하여 자기 계발은 개인시간에 따로 계획하고, 업무시간에는 GTD로 전쟁을 치르듯 주어진 업무들을 Get Things Done 시켜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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