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직이 갖는 의미? 카리스마와 능력의 딜레마

하루죙일 컴퓨터로 일하고 자료 만드느라 프로게이머 손바닥처럼 월구에 굳은살이 붉게 배기고 뻐근하지만, 그래도 하루에 생각 한조각이라도 남기지 않으면 오늘 또한 그저 돈 몇 푼 벌려고 숨쉬고 밥먹은 하루뿐이 될 것 같아서 뭐라도 쓴다. 구구절절한데 결론은 그냥 일기 한토막이란 얘기

전문능력과 관리능력 사이

회사에서 위로 올라갈수록 전문직이라기보단 영업직에 가까워지는 성격의 업무를 해야 한다. 작게는 이끌고 가는 조직 내부에서 아랫사람에게 일의 동기부여와 방향을 제시해주어야 하고, 여기저기 두더지처럼 튀어나오는 불만들을 조율해서 최대한 다수가 납득할만한 합리적인 분배를 해야 한다.

나아가 어떠한 Output을 내기 위해 추진력을 받으려면 나 혼자 또는 우리부서만의 힘으로 할 수 있는건 거의 없다. 대개가 타 부서의 손을 거쳐서 이루어지는데 이를테면 식당에 비유하는게 적절할 것 같다. 

내가 조리기구 담당이라 가스버너의 효율을 높이는 작업을 한다고 치자. 평소에는 손님들 음식을 만들어야 되니까 못쓴다고 할 것이고 괜찮은 시간을 물어서 장비를 교체를 하고 제대로 되었는지 테스트도 한 후 실제 쓰는 사람에게 평가도 해달라고 해야한다. 음식 맛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최종 손님 입맛 변화까지 고객 담당자에게 특이사항을 물어봐야 한다. 즉 어떠한 시스템 속에서 무언가를 하려면 각 단계를 구성하는 담당자들의 도움 없이는 불가능하다.

(식당 예가 회사조직의 특성이나 불합리 같은걸 설명할때 적절한거 같아서 앞으로도 자주 예시로 들어야겠다.)

타 부서와 협업을 이끄는 리더쉽

 

무슨 말을 하려고 하냐면, 대기업 부장 정도가 되면 하루에 반 이상은 회의에 불려다니면서 의사결정의 순간들이 계속 찾아오게 된다. 결정 하나하나에 밑에사람 수~수십 명의 업무량과 부서의 방향이 좌지우지되기도 한다. 가장 좋은건 그 결정을 하기 위한 지식과 경험이 해박해서 합리적인 판단을 하면서 동시에 우리 부서의 편의를 최대한 고려해주는 거다.

아까 예를 든 것처럼 가스 버너 교체작업을 하는데 작업하면 쓰레기 같은게 많이 발생해서 청소를 해야한다고 치자. 원래 식당 청소담당자들에게 요청을 해서 하면 되는데, 자기들은 원래 하기로 한 업무량만 하지 그건 니가 만든 일이니까 니가 작업하고 청소 해놓으세요 이럴수도 있다. 여기서 잘 설득을 해서 그쪽에 시키는게 윗사람의 재량이 된다.

대기업 조직의 커다란 시스템의 각 구성요소로 업무분업에 특성화된 부서들이 자기가 하던일 10에서 1을 더하는데 드는 시간이 위처럼 일을 발생시킨 쪽에 하라고 하면 3~5 정도가 소요된다. 회사 전체로 보면 Loss 아닌가. 그치만 좁게는 부서 이기주의가 곳곳에 만연해있기 때문에 실제로는 "아쉬운쪽이 하게되는" 경우가 많다.

리더의 업무

 

다시 정리하면, 윗사람이 될수록 가스버너 교체작업을 실제로 잘하는 전문성 능력보다는, 전체적인 업무진행과 편의도모를 살피고 타 부서를 잘 이끌어가는 리더쉽이 중요해지는 것이다. (이런 리더쉽을 가리키는 말은 따로 없나? 회사내 타 부서와의 협업 관점에서의 리더쉽?)

그래서 보면 대리, 과장때 자기일 잘하고 인정받고 하는 사람보다 언변과 임기웅변이 뛰어나고 사람 대하는 기술이 좋은 사람들이 나중되면 더 잘나가는 경우가 더러 있다. 이런 사람들은 상황판단도 빨라서 내가 받아야 될 일과 받으면 똥치우기인 일을 직감적으로 느끼고 현명하게 피해나간다. 심한 경우는 소위 빨대꼽기의 명수가 되기도 한다. 

사내정치라는 말도 괜히있는게 아니다. 위로 갈수록 내 손으로 직접 뭘 한다기보다는 전체에 떨어진 업무할당량을 밑에 부하들 수용가능한 범위내에서 적절히 분배하고 그 결과를 내 업적으로 삼는게 능력인 거니깐. 그러다 사장정도가 되면 하루 종일 회의와 출장이다. 메가급 영업사원인 셈이지 정말. (아물론 몇명 안되는 조그만 회사를 말하는게 아니라 대기업 사장이면 밑에 수만명 있으니까 군대로 치면 사단장하고 비슷한 지위라 보면 되겠다.)

전문성? vs 리더쉽?

 

여기에 회사생활에서 오는 딜레마가 생기게 된다. 자기 분야의 전문성만 디비 파봐야 한계에 부딪힌다는 것이다. 아마 우리나라 회사가 군대식 문화의 잔존 때문인 이유도 있겠고, 너무 실적을 단기간 안에 평가하는 것도 문제다. 그러다보니 1년 이상이 필요한 성과가 불투명한 프로젝트에 투자하는 것은 큰 Risk로 생각하여 보류되고, 눈앞에 보이는거 개선해서 수치로 바로 딱 나오는 것에만 매달리는 것이다.

그러니 연구실 박사들처럼 진드간히 몇 년씩 한우물 파서 기반기술의 경쟁력을 갖추는게 우리나라에서는 지극히 어렵다. 아마 대학도 지원 잘받는 Lab 몇 곳을 제외하고는 마찬가지일 것이다.

요약

회사에서 윗사람이 될수록 오랜 세월 쌓아온 전문분야의 능력발휘보다 부하에게의 리더쉽, 부서간 협업능력 같은 소통의 기술이 더 중요해지고 그걸 원치 않고 기술적인 몰두만 하고 싶어도 어쩔수가 없는 딜레마가 발생한다. 하지만 점차 조직내 불합리를 철폐하고 소통의 중요성이 인식되어가면서 회사전체의 이익을 우선한 합리적 결정은 존중받는 추세다. (반박불가) 그럴때는 단순 말빨보다 '아는 놈이 이기고 모르면 병신되는' 지식을 근거로 한 논의가 펼쳐지게 됨.

위로 올라갈수록 더 고민도 많아지고 책임도 늘어나서 받는 월급의 무게만큼 회사생활도 힘들어지는 것 같다. 휴- 점점 회사도 각박해지니 내가 나중에 그정도 될때가 되면 짐까지 말한 두가지가 다 갖춰지지 않으면 살아남기 어렵겠다. 아는것도 많으면서 소통과 리더쉽까지 뛰어나야 부장-임원 가능할듯. 뭐 그것 뿐이겠냐만은.. 외국어에 인맥관리에.. 에혀;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