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력의 역설, 의견도 호감도 신뢰도 없는 적과 함께해야 한다면?

참 제목 잘지었다. <협력의 역설> 마치 협력이 가지고 있는 모순과 한계를 말하면서 오히려 협력하지 않는 것이 나을때도 있다는 이야기를 할 것만 같은 제목이다.

표지에 각 글자마다 다른 폰트로 찍어서 서로 다른 입장을 가진 사람들이 협력하기 힘든 상황을 타이틀로 묘사하였다. 디자이너의 센스...

왼쪽 아래에 작게 쓰여진 <Collaborating with the Enemy> 적과의 협력이 이 책의 원제이다. 한국어 제목이 더 그럴싸하지만 내용에 더 잘맞는 제목은 역시 영어 원제인 것 같다.

협력 자체가 가지는 모순, 역셜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때론 어떠한 신뢰도 없는 적과 협력해야 하는 상황에서 기존의 방식을 내려놓고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가를 말하는 것이 이 책의 내용이니깐.

저자 애덤 카헤인은 (Adam Kahane) 수십년간 전세계에서 크고작은 문제들을 해결하는 프로젝트에 참여한 갈등해결 전문가이다. 그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갈등과 분쟁은 전문가가 풀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 문제의 당사자들이 단계적으로 다루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이미 여러 저서를 출간한 작가이기도 하다. 이번 책에서는 동의하지도 좋아하지도 믿을수도 없는 사람과 협력하게 되었을 때 접근하는 방법인 "스트레치 협력"에 대해 이야기한다.

다만 애덤 카헤인이 얼마나 대단한 인물인지는 모르겠으나... 이 <협력의 역설> 책 자체는 참 읽기가 불편하게 되어있다. 

첫째, 너무 개별적인 에피소드 위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서 몰입이 떨어진다. 무슨무슨 프로젝트에 참여했을때 누구누구가 있었는데 어땠더라 저땠더라 이런식으로 얘기하니까 그래서 포인트가 뭔지, 어떻게 협력해서 해결했다는 것인지 와닿지가 않는다.

둘째, 본론이 너무 늦게 나온다. 전통적인 방식의 협력으로 해결하는게 불가능하다는 주장을 책의 전반부에 걸쳐서 계속 주장하는데, 그러다보니 읽다 지쳐서 아 그래서 새로운 방식은 어떻게 한다는건데? 까지 가지 못하고 중간에 책을 덮어버리게 된다.

나처럼 독서 습관이 갖춰지지 않은 사람, 어려운 책도 진드간히 읽기엔 무리인 독서 초보자에겐 추천하고 싶지 않은 책이다.

 

셋째, 기대한 것만큼 별다른 알맹이가 없다. 그래서 스트레치 협력이라는걸 해서 어떻게 어려운 문제를 해결했는지가 보고 싶은데 그런게 없다. 그냥 계속 서로 다른 사람끼리 있으니까 스트레치 협력을 이렇게 해야한다는 주장만 반복...

사실 저자 애덤 카헤인의 갈등해결 성과는 대립되는 참여자끼리 기존의 방식이 아닌 새로운 접근법으로 문제해결을 향해 한발짝 나아가도록 하는 것이지, 수치적으로 "몇 % 향상되었습니다" 와 같이 표현할 수 있는 업적은 아닐 테니까. 그래도 스트레치 협력이라는 것을 통해 이렇게 문제를 풀었다 하고 깔끔하게 하나 소개해주면 좋았을텐데 그 점이 아쉽다.

위 세가지를 종합해서 말하자면, 일반인에게는 크게 와닿지도 그닥 도움되지도 않는... CEO가 읽으면 어울릴법한 난해한 책. 이라고 할 수 있겠다.

문제에 대처하는 방법은 사실 간단하다. 선택지가 위와 같이 정해져 있다. 바꿀 수 없는 문제라면 참아야 하는데 참지 못하면 퇴장, 참으면 적응하면 된다. 협력은 상황을 바꿀 수 있는 문제에 접근하는 방법이다.

일방적으로 변화를 시킬 수 있으면 (상사가 부하에게, 국가가 개인에게) 강제로 시행하면 된다. 그렇지 않을 경우 변화에 대한 통제 여부에 따라 협력 방식을 정한다.

 

상호간에 협력해서 변화를 도모해야 하는 경우, 변화를 통제할 수 있으면 일반적인 협력 (전통적 방식) 그렇지 않으면 스트레치 협력방법으로 접근해야 한다.

통제할 수 없는 변화라는 것은 서로 입장이 달라서 전체의 목표에 공감도 안되고 문제가 무엇인지에 대한 정의부터 서로 생각이 다르고, 심지어 서로 적이어서 전혀 신뢰할 수 없는 경우들이다.

상호간의 협력으로 통제할 수 있는 변화를 이끌어낼 때는 전통적인 방식도 먹힌다. 전체에 가장 좋은 해결책을 찾는 것이다. 굳이 싸우지 않고 서로 한발 물러서서 타협점을 도출하거나 논리적으로 가장 적합한 전체의 이익을 도모한다.

하지만 참가자들의 관점 관심사가 다른 통제불능의 상황에서는 그 갈등 자체가 당연스러운 것으로 인식하고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 스트레치 협력의 출발이다. 싸워도 상관없다. 가장 기본적인 '문제가 있다' 라는 것에만 모두가 공감하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테이블 앞에 앉는 것에서 출발한다.

 

그 문제조차도 서로 생각하는게 다를지라도. 즉, 나는 A가 문제라고 생각하고 그걸 해결하기 위해 나왔고 저사람은 B가 문제라고 생각하고 그걸 해결하고 싶은 이렇게 서로 생각이 완전히 다르고 이해득실을 맞추기 어려운 상황이서는 그냥 그 상태로 진행하면 된다.

모두가 동의하는 해결책 도출도 필요없다. 스트레치 협력의 두번째는 시나리오 수립이다. 입장차가 극명한 참가자간의 갈등 상황에서 상대의 동의가 요구되는 결론을 도출하려고 하지 않는다. 지금 상황에서 할 수 있는 행동들을 그저 시나리오로 수립하고 선택지로만 남긴다.

예를 들어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같은 상황에서 꼭 뭐 휴전을 해야하는게 아니라, 국지전을 계속하는 경우, 전면전으로 발전하는 경우, 항복하는 경우, 휴전하는 경우, 통합하는 경우 등 가능한 시나리오들을 다 세우고 그에 따른 역할과 책임을 부여해놓는 것이다. 

그렇게 하는 것만으로 각자가 이 상황의 참여자가 되며 올바르게 직시할 수 있다.

마치 동호회처럼? 가벼운 관계 속에서 그냥 자신의 참여 목적에 따라 나와서 일시적인 토론과 협력을 한다는 것이다. 통합을 요하고 장기간의 노력이 필요한 계획에는 아무도 동의하지 않으니깐.

마지막으로 자신이 이 문제에 포함된 존재라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전통적 협력방식에서는 내 주장이 맞고 남이 틀려서 상대를 설득하려고 하는데 자원과 에너지를 쏟는다.

하지만 스트레치 협력에서 그런 승복은 불가능하므로, 먼저 자신부터 문제의 일부라는 생각으로 접근해야 한다. 내가 무언가를 지시하고 정리하는 역할이 아니라 이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문제속 하나의 요소일 뿐이라는 것이다.

문제의 일부가 아닌 사람은 해결책의 일부도 될 수 없다

읽고보니 회사에서도 이 스트레치 협력 방식을 알고 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본능적으로 구사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하는 부서간 논쟁에서, 한 발 물러서면서 "ㅇㅇ가 문제라는 부분에는 동의하시지요?" 라고 일단 낮은 수순에서 접근하는 화법이다. 한발씩 물러서며 간을 봐서 상대의 날을 무디게 만든 후 다시 한걸음씩 전진해나가는 방식이다.

스트레치 협력이라는 것도 저자같은 중재인이 프로젝트를 이끌때나 가능하지 막상 당사자들끼리 논의하는 상황에서는 갈등이 해결될 수 있을까 싶긴한데... 아무튼. <협력의 역설> 몰입이 어려운 난해한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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