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당한 스트레스 압박이 업무 효율을 높인다? 임원회의 보고준비하며

어느덧 나도 회사를 꽤 오래 다녔는데 참 여러가지 시기가 있었던 것 같다. 정말 하루하루 때려치우고 싶을 정도로 너무 끔직한 시절도 있었던 반면, 일에서 보람을 느끼면서 늦은 시간까지 자발적으로 분석에 몰두했던 적도 있었다.

어떨때는 그저 권태롭고 무료한 나날이 반복되기도 했고, 또 어느때는 하루하루 재밌는 일들 투성이로 다이나믹한 적도 있다.

요즘은 회사를 약간 나사가 반쯤 풀린 상태로 다니고 있었다. 출퇴근 시간 근태관리도 잘 하지 않고, 업무에 임하는 태도도 설렁설렁 적극성이 없다. 철밥통 공무원, 아니 대학교 동아리방에 기어나가듯 편한 마음으로 회사에 왔다갔다만 하고 있었다.

그러다 오랜만에 직접 임원보고를 할 일이 있어서 준비를 하는데, 또 만족 원숭이와 패닉 몬스터가 등장한다.

 

 

이주일 가까운 시간이 주어졌었지만 띵가띵가 놀다가 이틀이 남아서야 부랴부랴 파워포인트 자료를 만들고 준비를 시작한 것이다.

자료를 만들려니 뭘 알아야지. 그동안의 업무 진행 이력도 다시 꼼꼼히 다 훑으며 정리하고, 보고를 할 포인트가 무엇인지 의사결정 받을 부분은 어떤 것인지 핵심을 고민한 뒤, 그에 맞춰서 간결하고 직관적인 피피티를 만들고 수정했다.

원래도 말주변이 없어서 오랜만에 발표하면 또 어버버 거릴까봐, 미리 자료를 보면서 줄줄이 타이핑해서 대본도 써보고 발표하는 연습도 했다.

 

내가 듣고 있는 높으신 경영진이라면 어떤 질문을 할까 역으로 생각해보면서 디테일한 백 데이터도 머리에 넣어놓았다.

(스무고개에서 몇 번의 질문까지 버티다가 확인해보겠습니다 라고 하는지에 따라 업무역량이 매겨진다.)

내 발표자료와 관련된 다른 부문의 최근 업무현황도 체크해 놓고, 반대 의견으로 태클 들어올 경우 "반박시 니 말이 맞음" 이럴수는 없기에 논리적인 허점은 없는지 앞뒤 내용을 검토하고 또 수정했다.

열심히 준비하다보니 오랫동안 잠자고 있던 일세포가 다시 하나둘씩 깨어났다. 시작하기 전에 막연한 두려움으로 만족 원숭이가 현실을 외면하게 만들다가, 막상 패닉 몬스터 등장하고 스퍼트를 내다보니 도파민이 분비되면서 약간의 흥분과 성취감을 느낀 듯 하다.

정작 발표 자체는 허무하게 끝났다. 내가 준비한 주제가 사실 높으신 분들의 레이다망에서 그다지 관심이 없는 것이어서 우려했던 것처럼 날카로운 질문이나 질책이 쏟아지지도 않았다. 벼락치기로 준비했기에 나 역시 발표를 썩 잘하지도 못했다. 그냥저냥 무난하게 대충 넘어가고 말았달까.

 

약간의 허탈한 마음도 들긴 했지만 한편으로는 어쩌다 한번쯤은 (절대 매일 매주는 말고) 이런 압박이 가해지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다는 생각을 했다. 알아서 일을 찾아서 하고 성과를 포장하는 그런 치열한 경쟁문화가 아니다 보니, 딱히 떨어지는 업무가 없으면 빈둥거리게 된다. 쉽게 권태로 이어진다.

부담이 조금 될만한 업무량이 떨어지면 적당한 긴장도 되고 효율도 올라가는 듯 하다. 이렇게 한번 발표준비 하다보면 보고자료 작성하고 발표하는 스킬도 길러지고, 또 평소에 업무에 대해 빠삭하게 파악하고 정리도 잘 해놓아서 일정에 휘둘리는게 아니라 내가 주도적으로 끌고갈 수 있다.

매일 쓸데없는 보고성 회의에 치이면 그 또한 문제인데, 너무 쪼는 사람이 없어도 사람이 나태해지고. 뭐든 적당히가 참 중요한 것 같다. 누가 시켜서 하는게 아니라 스스로 업무를 관리해서 해버릇 해야 할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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