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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시대 최대의 금융위기 1347년 바르디-페루치 은행 도산

금융치료사 피터 2024. 11. 29.

1347년 플로렌스의 바르디와 페루치 은행의 도산은 중세 유럽 최대의 금융위기였다. 영국 왕실의 채무불이행이 직접적 원인이었으나, 당시 유럽 금융시스템의 구조적 취약성을 드러낸 사건이었다. 두 은행의 파산은 국제금융의 중심지였던 플로렌스 경제에 치명타를 입혔다.

위기의 전개 과정

1340년대 초, 영국 에드워드 3세는 프랑스와의 백년전쟁 전비 조달을 위해 플로렌스 은행들로부터 150만 플로린이라는 거액을 차입했다. 이는 당시 플로렌스 연간 세수의 3배에 달하는 금액이었다.

전쟁이 장기화되자 에드워드 3세는 1345년 채무상환을 중단했고, 이는 바르디와 페루치 은행의 연쇄 도산으로 이어졌다.

두 은행은 당시 유럽 최대 규모의 금융기관이었다.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지중해 연안에 지점망을 갖추고 있었고, 교황청의 재무도 담당했다.

특히 바르디 은행은 유럽 전역의 모직물 무역을 장악하고 있었다. 이들의 도산은 유럽 전체의 신용체계를 마비시켰다.

금융시스템의 취약성

 
구조적 문제점
• 과도한 왕실 대출 집중
• 불완전한 위험분산 체계
• 자본금 대비 과다 여신
• 국제 지점망의 취약한 통제
• 단기차입 장기대출의 불일치
• 담보평가의 불확실성

경제적 파급효과

분야 직접 영향 간접 영향
금융 은행 연쇄 도산 신용경색
무역 모직물 무역 위축 상업 침체
제조업 섬유산업 타격 실업 증가
도시경제 세수 감소 공공사업 중단

사회경제적 변화

금융업의 구조조정

 

위기 이후 플로렌스의 금융업은 근본적인 변화를 겪었다. 대형 은행들은 왕실 금융을 기피하고 상업금융에 집중했다.

메디치 가문처럼 새로운 금융가문들이 부상했는데, 이들은 분산투자와 위험관리를 중시했다. 특히 지점별 독립채산제와 파트너십 제도를 통해 리스크를 통제했다.

도시 경제의 변화

플로렌스 경제의 변화
• 금융업 규모 축소
• 제조업 중심으로 전환
• 길드 시스템 강화
• 도시 자치권 확대
• 세제 개혁 단행

현대금융에의 교훈

바르디-페루치 사태는 현대 금융위기와 놀라울 정도로 유사한 패턴을 보여준다. 특히 과도한 레버리지, 자산-부채 만기 불일치, 특정 차주에 대한 과도한 익스포저 등은 오늘날에도 금융위기의 주요 원인이 되고 있다. 2008년 금융위기 리먼브라더스의 파산이나 유럽 국가부채 위기와 비교할 만하다.

또한 국제금융의 상호연관성이 초래할 수 있는 시스템 리스크도 여실히 보여줬다. 한 도시의 은행 파산이 유럽 전역의 금융위기로 확산된 것은, 금융의 글로벌화가 가진 위험성을 경고한다.

이는 국제적 금융감독과 협력의 필요성을 제기한 최초의 사례로 볼 수 있다.

금융규제 교훈 요약

현대적 시사점 구체적 적용
리스크 분산 대출 집중도 규제
자본적정성 BIS 비율 규제
유동성 관리 만기별 유동성 규제
국제 협력 바젤 위원회 체제

BIS 등 다양한 금융규제 정책들에 대해서는 별도로 하나씩 세세하게 다루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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