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GO의 위기와 부활 - 90년 장난감 제국의 성공 스토리 🧱
어릴 적 한 번쯤은 가지고 놀았을 법한 장난감 브랜드 레고(LEGO). 단순한 플라스틱 블록이 전 세계 어린이와 어른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비결은 무엇일까? 흥미로운 점은 이 거대 장난감 기업이 2000년대 초반 파산 직전까지 몰렸다가 극적으로 부활했다는 사실이다.
목수의 작은 워크숍에서 시작해 글로벌 브랜드로 성장한 레고의 90년 역사에는 위기 극복과 혁신, 그리고 본질에 충실했던 경영 철학이 숨어 있다. 오늘은 레고의 흥망성쇠와 그 속에 담긴 비즈니스 교훈을 살펴보자.
연도 | 주요 사건 및 전환점 | 의미와 결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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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2 | Ole Kirk Christiansen, 덴마크 빌룬드에 레고 설립 (목재 장난감 사업) | 대공황 속 생존을 위해 장난감 제조로 전환; 레고의 탄생 |
1934 | 회사 명칭을 "LEGO"로 결정 ("leg godt", 덴마크어로 "잘 논다"에서 유래) | 레고 브랜드의 이념 정립 ("즐겁게 놀다"라는 철학) |
1942 | 공장 화재 발생으로 목재 장난감 공장 소실 | 위기를 딛고 공장 재건; 품질 향상 및 사업 재정비 계기 |
1947 | 덴마크 최초의 플라스틱 사출 성형기 도입 | 플라스틱 장난감 시대 개막; 레고 블록 개발의 토대 마련 |
1949 | 초기 플라스틱 블록인 "Automatic Binding Bricks" 출시 | 현대 레고 블록의 전신 등장; 조립식 완구로 사업 방향 전환 |
1958 | 레고 블록의 결합력 향상을 위한 스터드-&-튜브 결합 원리 완성 (현재의 레고 블록 탄생) | 레고 시스템의 핵심 확립; 무한한 조립 가능성 제시 |
1960 | 두 번째 공장 화재로 목재 완구 재고 소실 – 이를 계기로 목재 제품 중단 | 플라스틱 블록에 집중하는 전략적 전환점 |
1978 | 사람 모양의 미니피겨(minifigure) 첫 도입 및 Town/Space/Castle 등 테마 출시 | 현실감 있는 놀이 세계 구현; 테마별 스토리텔링 확장 |
1999 | 스타워즈 등 첫 라이선스 제품 출시 | 외부 IP 도입으로 매출 증대; 새로운 팬층 확보 |
2003 | 사상 최악의 적자 기록, 약 8억 달러 부채로 파산 위기 직면 | 무분별한 확장으로 인한 레고의 위기 정점; 긴급 구조 필요 |
2004 | 최초의 외부인 CEO인 Jørgen Vig Knudstorp 영입 및 대대적 구조조정 | 턴어라운드 시작: 핵심 사업 집중과 비용 구조 개선 |
2012 | 신제품 LEGO Friends 출시 – 기대 이상의 흥행으로 매출 급등 | 새로운 고객층(여아) 확보; 제품 다각화 성공 사례 |
2014 | The LEGO Movie 영화 개봉 – 전 세계적 히트로 브랜드 위상 강화 | 레고 완구 판매 및 이익 대폭 증가; 레고가 세계 1위 완구사 등극 |
2017 | 13년 만에 매출 감소로 1,400명 구조조정 및 새 CEO(닐스 크리스티안센) 취임 | 조직 복잡성 해소와 신성장 전략 모색; 두 번째 도약 준비 |
2020년대 | 디지털 전략 (레고 마리오, VR/메타버스 파트너십 등) 강화 및 지속가능성 투자 (식물기반 플라스틱 활용 등) | 미래 세대와의 소통 및 환경 대비; 장기 성장과 브랜드 가치 유지 |
작은 목공소에서 레고의시작
레고의 시작은 그리 화려하지 않았다. 1932년 대공황 시기, 덴마크의 작은 마을 빌룬드에서 목수 올레 키르크 크리스티안센은 가구 주문이 줄어들자 생계를 위해 목재 장난감 제작으로 방향을 전환했다. '레고(LEGO)'라는 이름은 덴마크어 'Leg Godt'에서 따온 것으로 '잘 놀자'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창업 초기부터 올레는 "최고만이 충분히 좋다(Only the best is good enough)"라는 모토를 내세우며 품질에 타협하지 않았다.
한 가지 재미있는 일화가 있다. 올레의 아들 고트프레드가 비용을 절감하기 위해 나무 오리 장난감에 니스를 세 번이 아닌 두 번만 발랐다가 아버지에게 크게 혼났다고 한다. 올레는 모든 제품을 회수해 다시 칠하게 했을 정도로 품질에 집착했다. 이런 철학이 오늘날까지 레고의 DNA로 이어지고 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레고는 중요한 전환점을 맞는다. 목재가 부족해지자 올레는 과감하게 플라스틱이라는 새로운 소재에 눈을 돌렸다. 1947년 덴마크 최초로 플라스틱 사출 성형기를 도입했고, 1949년에는 초기 형태의 플라스틱 블록 '오토매틱 바인딩 브릭스(Automatic Binding Bricks)'를 출시했다.
진정한 혁신은 거의 10년간의 연구 끝에 1958년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레고 블록의 디자인 - '스터드-앤-튜브' 연결 시스템이 완성되면서 이루어졌다. 이 특허는 레고의 핵심 경쟁력이 되었고, 60년이 넘은 지금까지도 1958년에 만든 블록과 최신 블록이 완벽하게 호환된다. 놀랍지 않은가?
1960-70년대는 레고의 전성기였다. 레고랜드 테마파크 오픈(1968년), 더 큰 아이들을 위한 테크닉 라인 출시, 그리고 1978년 작은 사람 모양의 미니피겨 도입은 레고를 단순한 블록에서 스토리텔링이 가능한 세계로 확장시켰다.
위기의 레고 - 2000년대 초 파산 직전까지 몰린 이유 💰
90년대까지 승승장구하던 레고는 2000년대 초반 심각한 위기에 직면했다. 2003년에는 역사상 최악의 재정 손실을 기록하며 파산 직전까지 갔다. 당시 손실액은 약 7억 3천만 달러, 총 부채는 10억 달러에 달했다. 무엇이 이런 위기를 불러왔을까?
위기의 원인을 살펴보면
▲ 과도한 사업 다각화 - 레고는 본업인 블록 장난감에서 벗어나 의류, 시계, 비디오 게임, 테마파크, 소프트웨어, 출판 등 너무 많은 분야로 확장했다. 이로 인해 브랜드 정체성이 흐려지고 운영 복잡성이 증가했다.
▲ 제품 라인의 복잡화 - 레고 블록과 부품의 종류가 1997년 6,000개에서 2004년 12,000개로 두 배나 증가했다. 이는 생산 비용과 재고 관리 비용을 크게 증가시켰다.
▲ 디지털 환경 변화 대응 실패 - 컴퓨터 게임과 디지털 엔터테인먼트의 성장으로 전통적인 장난감 시장이 위축되었으나, 레고는 이에 효과적으로 대응하지 못했다.
▲ 핵심 고객층 이해 부족 - 혁신을 위해 기존 디자이너들을 새로운 인력으로 교체했으나, 이들은 레고의 전통과 핵심 가치를 충분히 이해하지 못했다.
▲ 비효율적인 공급망 - 생산 계획과 재고 관리가 비효율적으로 운영되어 비용이 급증했다.
당시 상황이 얼마나 심각했는지 보여주는 일화가 있다. 2004년 새로 부임한 요르겐 비그 크누드스토르프 CEO는 내부 회의에서 "우리는 지금 불타는 플랫폼 위에 서 있습니다. 현금은 바닥나고 있고... 이대로 가면 살아남지 못할 것입니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야말로 창사 이래 최대 위기였던 셈이다.
레고의 부활 - 본질로 돌아간 턴어라운드 전략 🔄
2004년, 레고는 창업가 가문이 아닌 외부에서 34세의 전문 경영인 요르겐 비그 크누드스토르프를 CEO로 영입했다. 전 맥킨지 컨설턴트였던 그는 "Back to Brick(블록으로 돌아가자)"이라는 슬로건 아래 대대적인 구조조정과 전략 변화를 이끌었다.
레고의 회생 전략은 크게 네 가지 방향으로 진행되었다:
1) 핵심 사업 집중과 비핵심 사업 정리
구조조정 전 | 구조조정 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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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00개 이상의 부품 종류 | 6,000개 수준으로 감소 |
직영 레고랜드 테마파크 운영 | 테마파크 지분 70% 매각 |
자체 비디오 게임 개발 | 외부 라이센싱 방식으로 전환 |
의류, 시계 등 비핵심 사업 직접 운영 | 라이센스 계약이나 합작으로 전환 |
크누드스토르프는 "첫 번째 집중하고, 두 번째 연결하고, 세 번째 탐험한다"라는 명확한 원칙을 세웠다. 우선 레고의 본질인 블록 시스템에 집중하고, 운영 효율화를 통해 재정 건전성을 회복하는 데 주력했다.
2) 고객과의 관계 강화 및 참여 유도
레고는 기업과 소비자의 관계를 재정립했다. 특히 성인 레고 팬(AFOL, Adult Fans of LEGO)들과 적극적으로 소통하기 시작했다. 2005년에는 'LEGO Factory'(나중에 'Design By Me'로 개명)를 출시하여 고객이 직접 디자인한 레고 세트를 주문할 수 있게 했다.
2008년에는 더 혁신적인 플랫폼인 'LEGO Ideas'(당시 'LEGO Cuusoo')를 출시했다. 이 플랫폼에서는 누구나 자신의 레고 제품 아이디어를 제안하고, 1만 명 이상의 지지를 받으면 실제 제품으로 출시될 가능성이 생겼다. 이는 소비자를 단순한 고객에서 공동 창작자로 변화시킨 혁신적인 접근법이었다.
3) 운영 효율화와 비용 구조 개선
레고는 생산 시설을 덴마크에서 체코, 멕시코 등 비용 우위 지역으로 일부 이전하여 원가 경쟁력을 확보했다. 또한 제품 개발 프로세스를 재구성하여 새 제품의 수익성을 사전에 철저히 검증하는 시스템을 도입했다.
크누드스토르프 CEO는 "가치 창출에 도움이 되는 복잡성은 키우고 효과적으로 관리하되, 이를 지연시키는 복잡성은 최소화해야 한다"는 원칙을 제시했다. 이는 모든 기업이 복잡성 관리에 참고할 만한 훌륭한 지침이다.
4) 목적 중심의 기업 문화 재정립
레고는 단순히 비용 절감이나 효율화를 넘어 기업의 존재 이유를 재정립했다. "내일의 건축가(아이들)을 영감하고 개발하는 것(To inspire and develop the builders of tomorrow)"이라는 미션을 명확히 하고, 모든 의사결정의 나침반으로 삼았다.
이러한 전략이 놀라운 성과를 가져왔다. 레고는 2005년에 영업이익 2억 크로네를 기록하며 첫 흑자 전환에 성공했고, 2006년에는 매출이 전년 대비 19%, 순이익은 40% 증가했다. 2010년대에 들어서면서 레고는 완전한 부활을 이루었고, 2014년에는 마텔을 제치고 세계 최대 장난감 기업으로 등극했다.
특히 놀라운 것은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 시기에도 레고의 매출이 13% 증가했다는 점이다. 실내에 갇힌 아이들과 어른들이 창의적인 활동을 찾으면서 레고 세트가 큰 인기를 끌었던 것이다.
레고의 현대적 혁신 - 디지털과 지속가능성 💻🌱
레고의 부활은 단순히 과거로 돌아간 것이 아니라, 전통과 혁신 사이의 균형을 찾은 결과다. 특히 두 가지 측면에서 레고의 현대적 혁신이 돋보인다.
디지털 전환과 미디어 믹스 전략
레고는 디지털화를 위협이 아닌 기회로 삼았다. 2014년 워너브라더스와 협업하여 선보인 「The LEGO Movie」는 전 세계 박스오피스 4억6천만 달러를 기록하는 대성공을 거두었다. 이 영화의 인기에 힘입어 레고 완구 매출도 크게 증가했다.
디지털 경험과 물리적 블록의 결합도 시도했다:
▲ 레고 마인드스톰과 부스트 - 프로그래밍 가능한 로봇 세트를 통해 STEM 교육 시장 진출
▲ 레고 히든 사이드 - 증강현실(AR) 기술을 활용해 실제 레고 세트와 모바일 앱을 연동
▲ 레고 슈퍼마리오 - 닌텐도와 협업한 인터랙티브 게임 세트
▲ 에픽게임즈 파트너십 - 메타버스 구축을 위한 전략적 투자
이런 시도들은 디지털 네이티브 세대를 레고 생태계로 끌어들이는 데 큰 역할을 했다. 특히 코로나19 팬데믹 동안 e커머스와 디지털 마케팅에 집중한 전략은 매출 성장에 크게 기여했다.
지속가능성을 향한 대담한 도전
플라스틱 장난감 제조업체로서 레고는 환경 문제에 특히 민감할 수밖에 없다. 2015년 레고는 "2030년까지 자사 제품을 모두 지속가능한 재료로 만들겠다"는 목표를 선언하고, 대규모 투자를 통해 바이오 기반 플라스틱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2018년부터는 사탕수수에서 추출한 소재로 만든 식물 모양 레고 부품을 시범 생산했고, 재활용 페트병으로 만든 프로토타입 블록도 공개했다. 또한 2025년까지 모든 제품 포장재를 재생가능 또는 재활용 소재로 전환할 계획이다.
이런 지속가능성 전략은 단순한 PR을 넘어 레고의 장기적 생존 전략이다. 환경 의식이 높아지는 시대에 플라스틱 장난감 제조업체로서 미래를 보장하기 위한 필수적인 변화라고 할 수 있다.
레고에서 배우는 비즈니스 교훈 📚
90년에 걸친 레고의 역사는 모든 기업과 경영자에게 귀중한 교훈을 준다. 특히 위기에서 부활한 레고의 사례는 어려움에 처한 기업들에게 영감을 줄 수 있다.
1. 핵심 가치와 정체성을 지켜라
레고가 위기에서 벗어난 가장 큰 이유는 자신들의 핵심 제품인 블록 시스템으로 돌아갔기 때문이다. 다양한 사업 확장은 매력적으로 보일 수 있지만, 자신의 핵심 역량을 잃으면 위험해진다. 레고의 회생 전략은 "전략은 바꾸되, '하나하나의 블록을 완벽하게 만든다'는 핵심가치에 있어서는 타협을 허용하지 않았던 것"에 있다.
2. 복잡성을 효과적으로 관리하라
레고의 위기는 부분적으로 과도한 복잡성에서 비롯되었다. 제품 라인과 부품이 너무 많아지면서 운영 비용이 급증했다. 크누드스토르프 CEO의 원칙 - "가치 창출에 도움이 되는 복잡성은 키우고, 이를 지연시키는 복잡성은 최소화해야 한다" - 은 모든 기업에 적용할 수 있는 지혜다.
3. 고객을 공동 창작자로 끌어들여라
레고는 소비자를 단순한 구매자가 아닌 제품 개발 과정의 파트너로 변화시켰다. 레고 아이디어스 플랫폼을 통해 팬들의 창의력을 활용하고, 이미 검증된 아이디어를 제품화함으로써 실패 위험을 줄였다. 이는 집단지성을 활용한 오픈 이노베이션의 좋은 사례다.
4. 전통과 혁신 사이의 균형을 찾아라
레고는 디지털 시대에 적응하면서도 물리적 블록 놀이의 가치를 포기하지 않았다. 대신 두 가지를 결합하는 방식으로 혁신했다. 이는 기업이 변화하는 환경에 적응하면서도 자신의 핵심 가치와 정체성을 지켜야 한다는 중요한 교훈을 준다.
5. 장기적 관점을 유지하라
가족 소유 기업인 레고는 단기적인 이익보다 장기적인 브랜드 가치와 지속가능성을 중시한다. 특히 2015년부터 진행 중인 지속가능한 소재 개발은 당장의 비용 증가에도 불구하고 장기적인 생존과 성장을 위한 투자다. 이런 장기적 관점이 어려운 시기를 견디게 해주었다.
오늘날 레고는 물리적 블록을 넘어 디지털 경험, 영화, 게임, 교육 도구 등으로 영역을 확장하고 있지만, 그 중심에는 여전히 창의성과 상상력을 키우는 블록 시스템이 있다. 레고의 사례는 위기가 단순한 생존의 문제를 넘어, 기업을 근본적으로 재정의하고 더 강력하게 만드는 기회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블록 하나하나를 조립해 무엇이든 만들 수 있는 것처럼, 기업도 위기의 순간에 기본으로 돌아가 자신만의 강점을 재발견하고 미래를 향해 한 블록씩 쌓아나갈 때 지속적인 성공을 이룰 수 있지 않을까? 레고의 역사는 그 가능성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생명력 강한 사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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