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기 역사 살펴보기 : 1772년 영국 유럽 신용위기

1772년 신용위기는 영국 런던과 스코틀랜드 에든버러에서 시작된 최초의 현대적 의미의 국제 금융위기다. 에어 은행의 붕괴로 시작된 위기는 유럽 전역으로 전염되며 근대 금융시스템의 취약성을 드러냈다. 이는 오늘날 금융위기의 원형으로 평가받는다.

위기의 핵심 요약

✔️ 발생 시점: 1772년 6월 8일
✔️ 발생 지역: 스코틀랜드 에든버러
✔️ 최초 도산: 에어 은행(Ayr Bank)
✔️ 피해 규모: 약 150만 파운드(현재 가치 약 3억 파운드)
✔️ 영향권: 영국, 네덜란드, 스웨덴, 러시아, 독일 등
✔️ 종결 시점: 1773년 말

위기의 전개 과정

버블의 형성

동인도회사의 주식을 담보로 한 신용 확장이 위기의 시작이었다. 런던의 금융업자들은 수표와 약속어음을 남발하며 투기적 거래를 확대했다. 특히 스코틀랜드의 은행들은 부동산 가격 상승을 기대하며 과도한 대출을 실행했다.

 

닐 가문과 포다이스의 파산

1772년 6월, 런던의 대형 금융업자 알렉산더 포다이스가 파산했다. 이어서 스코틀랜드의 유력 금융가문인 닐 가문이 운영하던 에어 은행이 무너졌다. 두 사건은 연쇄적인 금융 패닉을 촉발했다.

전통적 은행과 신흥 은행의 차이

구분 전통 은행 신흥 은행
자본 구조 자기자본 중심 차입금 의존
영업 방식 보수적 여신 공격적 확장
리스크 관리 엄격한 담보 평가 느슨한 신용 평가
생존 여부 대부분 생존 다수 파산

위기의 전파 경로

 

런던-에든버러 간 금융 네트워크를 통해 위기가 확산됐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금융가들이 영국 은행들과 거래를 중단하며 유동성 위기가 심화됐다. 함부르크, 스톡홀름 등 북유럽 도시들로 위기가 전염되며 국제적 신용경색이 발생했다.

정부의 대응

영국 정부와 런던의 주요 은행들은 공동으로 구제금융을 제공했다. 잉글랜드 은행은 할인율을 낮추고 유동성을 공급했다. 스코틀랜드에서는 로열뱅크가 중심이 되어 금융시장 안정화를 도모했다.

위기 극복 과정의 특징

1. 중앙은행의 역할 확립
2. 국제 금융협력의 시작
3. 은행 규제의 필요성 인식
4. 신용평가의 중요성 부각

현대적 시사점

1772년 위기는 현대 금융위기와 놀라울 정도로 유사한 패턴을 보인다. 과도한 신용팽창, 자산가격 버블, 국제적 전염효과, 시스템 리스크 등 오늘날 금융위기의 주요 특징들이 이미 나타났다. 특히 금융혁신과 규제 사이의 균형, 국제 금융협력의 중요성은 현재도 유효한 교훈이다.

또한 이 위기는 금융시장에서 신뢰의 중요성을 보여준다. 평판이 좋은 금융기관도 유동성 위기에 취약할 수 있으며, 시장 전체의 신뢰가 무너지면 건전한 기관마저 도산할 수 있다는 점을 증명했다. 이는 금융감독과 리스크 관리의 근간이 되는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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