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인턴, 만약 헬조선에서 일어난다면

이미 더폰, 마션, 량첸살인기 같은 영화들이 히트를 치고 있는 상태에서 비교적 늦게 관람하게 된 인턴. 하지만 잔잔하게 꾸준히 관객을 동원하는데는 다 이유가 있었다. 크게 들었다 놨다 하는 블록버스터는 아니면서 스스로에 대해 돌이켜보게 만드는 성찰을 안겨준 영화 인턴.

※ 영화 인턴 간단줄거리 (스포일러 주의)

부사장까지 역임하며 무려 40년간 반평생이상 회사생활을 해온 로버트드니로(벤), 아내를 사별한 후 자신의 삶에 대한 의미를 부여하기 위한 과정을 거치던 중에 우연히 시니어인턴 모집 광고를 보고 신청하게 된다.

영화 인턴은 소소한 그의 일상소개로부터 시작하게 되는데, 나름 성공한 인생을 살았지만 사람은 누구나 죽는 것이고 은퇴후에는 다시 혼자로 돌아가서 스스로를 돌아보는 모습이 의미심장하게 와닿았다.

특히 시니어인턴 프로그램 신청하는 자기소개 동영상 촬영을 할 때는, 울컥할 정도로 감동적인 말을 정말 멋지게 -하지만 담담하게- 하시는 할아버지였다. 영화 인턴 속에서도 직원들이 동영상 보고 눈물을 흘렸다는 설정이 들어감.

젊은 나이에 쇼핑몰 창업이 대성공을 거두어 직원 200명이 넘는 어엿한 회사의 CEO를 하고 있는 앤해서웨이(줄스). 회사의 모습이 나올 때 자리가 칸막이 없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모습은 좀 별로라고 생각되었지만,

사무실에서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사장님의 모습과 격식없는 완전한 수평구조 회사조직같은 모습은 마치 광고기획사 제일기획의 사내모습을 떠올리게 했다.

이런 완전 젊은 느낌의 IT기업에 70살 노인이 인턴으로 오게되는 것이 영화 인턴의 재미있는 설정이다.

때지난 삼성 폴더폰을 사용하며 정보기기에 문외한인 할아버지가 겪는 좌충우돌을 그리려는 것인가도 했으나, 그런건 감초처럼 살짝만 섞었고 오히려 진짜 어른다운 할아버지를 통해 앞만 보고 달려가고 있던 젊은이들이 힐링을 받고 영감을 얻게 되는 내용에 중점을 두고 있다.

젊은 나이에 사장님이라는 직함과 흔들리는 부부관계까지 신경쓰며 육아도 해야하는 워킹맘 앤해서웨이(줄스)의 어깨에 놓인 중압감은 실로 어마어마할 것이다. 가끔 갈 곳이 보이지 않아 방황하는 그에게 로버트드니로(벤)는 감놔라 배놔라 하는 간섭보다는 지긋이 곁에서 위로하고 용기를 복돋아준다. 보는 나마저 따뜻해지고 든든할 정도. 

킹스맨에 나왔던 Manner Makes a Man 이라는 구절이 다시금 떠올랐다.

그가 시니어 인턴을 지원하게 된 계기도 아마 자신이 몸담아 일했던 회사 -지금은 시대에 뒤쳐져 사라진 전화번호부를 만드는 회사지만- 가 위치한 곳이었기 때문일수도 있다.

40년동안 일했던 회사에 새롭게 입주한 젊은 기업의 인턴으로 들어가는 느낌은 어떨까. 또 내가 만든 회사 사무실 자리에 40년 전부터 일해왔던 분을 마주한 기분은 또 어떠며.

영화 인턴 속 설정에서도 로버트 드니로는 부사장까지 역임했던 회사생활에서 성공했다고 할 수 있는 인물이다. 여기에서 많은 것을 느끼게 했는데, 한국에서 임원까지 달며 성공하는 인재상과는 정말 정반대로 동떨어진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다. 미국과 우리의 차이가 아니라, 어쩌면 아날로그 시대에 성공한 사람과의 차이일 수도 있다.

◆ 영화 인턴, 헬조선에서의 모습이었다면

부사장까지 했는데 애초에 시니어인턴 프로그램을 한다는 일 자체도 없었겠거니와 (전관예우가 있잖애) 조금이라도 무시하는 소리를 들었다면 발끈해서 호통치며 "너 몇살이야? 대가리에 피도 안마른게!" 소리가 나왔을지도 모르겠다. 젊은 애들 일하는 모습을 보며 이런 이래야지 저건 저래야지 점점 자기가 보스노릇, 왕놀이를 하려고 들었을 수도 있고.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이해하고 상대방이 원하는 것을 주기 위해 노력하면서 얻어온 성공의 길과 달리 요즘에는 어떻게든 일은 편하면서도 힘은 센 부서로 들어가는 것과 위로 올라가려면 밑에 사람들에게 빨대를 최대한 꼽아서 뽑아먹는 것이 포인트니까 말이다. 

어떻게 보면 옛날보다 더 상명하복을 해야만 인정받고 상사지향적으로 업무를 하는 분위기가 된 것 같다. 당연히 그 와중에 의견제시나 창의적 해법논의 같은 것은 없다. 그냥 시킨대로 최대한 빨리, 밤낮없이 주말없이 나와서 무식하게 많이 일하는 모습을 보여야 아 얘 열심히 하는구나 고생하는구나 하고 인정받는거지.

◆ 우리네 회사생활과 삶을 잠시 돌이켜보게 만드는 영화 인턴

영화 인턴은 로버트드니로가 제2의 인생을 시작하는 모습을 그리는 부분도 있지만, 치열하게 살아가는 우리 젊은 세대들에게 한번씩 질문을 던진다.

애와 놀아주는 시간이 일주일에 몇분이랬더라 (시간도 아니고) OECD 최하위인 헬조선. 과연 일에 치여 가정을 버리고 사는게 맞는 것인지. 무엇을 소중하게 생각해야 하는지. 일 때문이라는 핑계만 대지 말고 정말 어떻게 그 속에서 조화를 찾을 것인지.

그 밖에 현재 헬조선이라 불리게 된 이유인 각종 사회부조리와 낮은 행복지수 속에서 우리가 찾아야 할 길은 어떤 방향인가도 고민하게 만든다. 그저 부속품처럼 돈벌이를 위해 모든 개인생활을 희생하고 임하는 회사생활이 그만큼의 의미가 있는 것인가.

어쩌면 명문대 경영학과 나오고 14시간씩 잡일만 하고 있는 비서의 모습이 우리네 모습과 가장 닮아있는지도 모르겠다. 열심히 일하면, 그만큼 나의 비전과 앞날에도 회사가 도움을 주는 부분이 있어야 할텐데, 그렇지 못한데서 오는 자괴감.

옛날처럼 평생직장으로 헌신하며 일할수도 없고, 그런자세로 하면 오히려 손해만 보는 지금 세태에서 회사에 얼마만큼의 의미를 부여할 것인가는 각자의 몫이다.

성공한 젊은 사장, 은퇴한 예전임원, 그리고 수많은 별볼일 없는 젊은 직원들. 여기에 우리네 회사모습과 우리 기준으로 성공했다고 여기는 한국식 임원의 인재상을 떠올려보며, 많은 생각을 하게 해준 영화 인턴이었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 회사와 생활의 조화를 찾는것, 어떻게 일을 할 것이며 얼마만큼의 의미를 부여할것인지. 그건 영화가 내게 남겨준 숙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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